
1999년 한 인터뷰에서 밀턴 프리드먼은 놀라운 예언을 했다.
그는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안정적인 인터넷 화폐”가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예언은 약 10년 후 비트코인의 출현으로 현실이 되었다.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이론이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프리드먼은 화폐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는 화폐가 단순한 교환의 매개체를 넘어 경제 전체의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고 보았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화폐 시스템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마치 종이 화폐가 금본위제를 대체했던 역사적 순간과 맞먹는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비트코인의 핵심 특징 중 하나는 중앙 통제 없이 운영된다는 점이다.
이는 프리드먼이 늘 경계했던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배제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경제 위기 때 무분별하게 화폐를 찍어내는 것을 프리드먼은 강하게 비판했다.
비트코인은 이러한 문제를 알고리즘으로 해결했다.
비트코인의 총 발행량은 2,100만 개로 정해져 있어, 어떤 중앙 기관도 마음대로 화페량을 조절할 수 없다.
이는 마치 프리드먼이 주장했던 ‘통화량 증가율 고정’ 정책을 디지털 세계에서 구현한 것과 같다.
프리드먼은 또한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을 자주 언급했다.
그는 과도한 화폐 공급이 물가 상승을 초래하고, 이는 결국 경제 전체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비트코인 시스템은 이런 인플레이션 우려를 해소한다.
새로운 비트코인의 생성 속도는 점차 감소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의 가치가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마치 금이 희소성 때문에 가치를 유지했던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프리드먼의 이상을 완벽히 구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프리드먼은 화페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중시했는데, 비트코인의 가격은 여전히 매우 변동성이 크다.
예를 들어, 2017년 말 비트코인 가격은 2만 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이듬해 3천 달러 수준으로 폭락했다.
이런 극심한 변동성은 화폐로서의 안정성을 해치는 요소다.
프리드먼이 살아있었다면 이 점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했을 것이다.
프리드먼의 또 다른 주요 관심사는 화폐의 유통 속도였다.
그는 화폐의 유통 속도가 경제 활동의 중요한 지표라고 보았다.
비트코인의 경우, 모든 거래가 공개 장부에 기록되어 유통 속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프리드먼이 꿈꾸던 ‘완벽한 화폐 정보’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비트코인의 거래량이 급증했는데, 이는 경제 불확실성 증가에 대한 실시간 지표로 활용되었다.
프리드먼은 국제 무역에서의 자유로운 화폐 거래를 지지했다.
그는 변동환율제를 옹호하며,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이 환율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은 이런 면에서 프리드먼의 이상에 가깝다.
국경을 넘는 거래가 자유롭고, 그 가치는 전적으로 시장에서 결정된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와 같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는 국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안전한 자산 보관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익명성은 프리드먼의 생각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프리드먼은 투명한 시장을 중시했는데, 비트코인의 익명성은 불법 거래나 탈세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3년 실크로드라는 불법 거래 사이트가 비트코인을 이용해 운영되다 적발된 사례가 있었다.
프리드먼이었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지 궁금하다.
프리드먼은 또한 화폐의 ‘가치 저장’ 기능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안정적인 화폐 가치가 경제 성장의 토대라고 보았다.
비트코인은 이 점에서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인플레이션 위험이 없어 가치 저장 수단으로 주목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심한 가격 변동성 때문에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2021년 초일론 머스크의 한 트윗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10% 이상 하락한 사례는 비트코인 가치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프리드먼은 ‘화폐의 중립성’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화폐 공급의 변화가 실질 경제 변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비트코인은 이런 면에서 흥미로운 실험 대상이 될 수 있다.
비트코인의 공급량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비트코인 경제에서 화폐의 중립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드먼은 화폐 정책의 ‘시차 효과’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했다.
그는 중앙은행의 정책이 실제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시스템에서는 이런 시차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2020년 5월 비트코인 채굴 보상이 반감되는 ‘반감기’ 이벤트가 있었는데, 이 효과는 거의 즉각적으로 시장에 반영되었다.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이론은 ‘화폐 환상’이라는 개념도 포함한다.
이는 사람들이 명목 가치와 실질 가치를 혼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비트코인 경제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예를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더 부자가 되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는 비트코인의 구매력이 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프리드먼은 화폐 정책의 ‘규칙’을 중시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재량적 판단보다는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시스템은 이런 ‘규칙 기반’ 접근방식의 극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코드로 정해져 있어 누구도 임의로 규칙을 바꿀 수 없다.
이는 프리드먼이 꿈꾸던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화폐 시스템’에 가까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