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어제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다녀왔다.
하루종일 신나게 놀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옷이 다 젖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어땠어?”라는 가족의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많은 사람들은 “비 때문에 다 망쳤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잠깐, 정말 그런가? 하루 종일 즐거웠던 시간들은 어디로 간 걸까?
다니엘 카너먼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두 자아는 우리가 행복을 인식하고 평가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험하는 자아는 현재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의식이다. 반면 기억하는 자아는 과거의 경험을 저장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놀랍게도, 이 두 자아는 종종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험하는 자아는 매 순간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
놀이기구를 달 때의 스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즐거움, 친구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눌 때의 행복감 등을 그대로 경험한다.
하지만 기억하는 자아는 이 모든 경험을 압축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법칙을 따른다.
첫째, 최고점-최저점 법칙이다. 기억하는 자아는 경험의 가장 극적인 순간과 마지막 순간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놀이공원에서의 하루 중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과 비를 맞으며 집에 돌아왔던 마지막 순간이 전체 경험을 대표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지만 기말고사에서 실수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이 학생은 1년간의 노력보다는 마지막 시험 결과를 더 강하게 기억하고, 그 해 전체를 실패한 해로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지속 시간 무시의 법칙이다.
놀랍게도, 경험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2시간 동안 즐거웠던 경험과 4시간 동안 즐거웠던 경험이 기억 속에서는 비숫한 강도로 남는다.
이는 우리의 직관과는 매우 다른 결과다.
예를 들어, 일주일 동안의 휴가와 이주일 동안의 휴가를 비교할 때, 사람들은 휴가 기간의 길이보다는 각 휴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들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참가자들에게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는 두 가지 실험을 했다.
첫 번째는 14도의 차가운 물에 60초 동안 손을 담그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같은 조건에서 시작해 60초가 지난 후 물의 온도를 살짝 높여 30초를 더 견디게 하는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두 번째 경험이 더 고통스러웠을 텐데, 놀랍게도 참가자들은 두 번째 경험을 덜 불쾌하다고 평가했다.
이는 마지막 순간의 경험이 전체 기억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2시간 동안 재미있게 본 영화라도 마지막 30분이 지루하다면, 관객들은 전체 영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중간까지는 평범했지만 마지막에 반전이 있는 영화는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의 차이는 우리의 의사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기억하는 자아’의 판단에 따라 미래의 선택을 한다.
예를 돌어, 다음 휴가지를 선택할 때 우리는 과거 여행의 전체적인 경험보다는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나 마지막 날의 기억에 더 많이 의존한다.
이는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객관적으로븐 덜 즐거웠던 경험을 반복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의료 분야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환자들이 치료 경험을 평가할 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고통스러운 검사나 수술 과정에서 마지막 순간을 조금 덜 고통스럽게 만드는것만으로도 환자의 전체적인 경험 평가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치과 치료 후 환자에게 따뜻한 음료를 제공하거나, 의사가 친절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전체 치료 경험에 대한 환자의 인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는 향후 의료 서비스 이용이나 치료 순응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