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초반, 경제학계에 한 젊은 학자가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밀턴 프리드먼. 그는 당시 경제학계의 정설을 뒤집는 대담한 예측을 내놓았다.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상승할 것이며, 필립스 곡선이라는 경제 이론이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프리드먼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고, 그의 통화주의 이론은 경제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프리드먼의 첫 번째 주요 예측은 인플레이션에 관한 것이었다.
1960년대 초, 미국 경제는 안정적인 성장을 누리고 있었다. 물가는 낮고 안정적이었으며, 실업률도 낮았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달랐다.
그는 정부의 과도한 통화 공급 증가가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리드먼은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가 돈을 더 많이 찍어내는 것은 마치 수프에 물을 더 부어넣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수프의 양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수프는 묽어지고 맛이 없어진다.
마찬가지로, 돈을 더 많이 찍어내면 일시적으로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물가만 올라가고 실질적인 경제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예측은 1970년대에 현실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통화량을 급격히 늘렸고, 이는 결국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초반에 1달러로 살 수 있었던 빵 한 덩어리가 1970년대 말에는 2달러 이상으로 올랐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사람들의 실질 구매력은 떨어졌고,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프리드먼의 예측이 적중한 것이다.
프리드먼의 두 번째 주요 예측은 필립스 곡선의 붕괴였다.
필립스 곡선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에 반비례 관계가 있다는 이론이다.
즉, 실업률이 낮아지면 인플레이션이 올라가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인플레이션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1960년대까지 경제학계의 정설로 여겨졌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이 이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톨 때,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실업률을 낮추려고 해도, 결국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고 행동하게 된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은 높은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고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할 것이고, 기업들은 물가 상승을 예상하고 가격을 몰릴 것이다.
결국 실업률은 원래 수준으로 돌아가고, 인플레이션만 높아진 상태가 된다.”
프리드먼은 이를 ‘자연실업률’ 이론이라고 불렀다.
그는 경제에는 일정한 수준의 실업률이 항상 존재하며, 이를 인위적으로 낮추려는 시도는 장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마치 탄력 밴드와 같아서, 아무리 잡아당겨도 결국 원래 위치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프리드먼의 이 예측도 현실이 되었다.
미국 경제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을 동시에 겪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예를 들어, 1975년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은 9.1%, 실업률은 8.5%에 달했다.
이는 필립스 곡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케인스주의자들은 당황했지만, 프리드먼의 이론은 이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프리드먼의 예측력은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예측은 철저한 데이터 분석과 논리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는 미국의 통화량과 물가 변동을 100년 이상 거슬러 몰라가 분석했고, 그 결과 통화량 변화가 물가와 경제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프리드먼은 1929년 대공황의 원인도 통화량 감소로 설명했다.
그는 “연방준비제도가 은행들의 파산을 막지 않고 오히려 통화량을 줄였기 때문에 불황이 심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929년부터 1933년 사이 미국의 통화량은 약 33% 감소했다.
이는 당시 널리 받아들여지던 견해와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프리드먼의 분석이 정확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프리드먼의 또 다른 중요한 예측은 변동환율제에 관한 것이었다.
1960년대까지 세계 경제는 브레튼우즈 체제라는 고정환율제 하에 있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이 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각국의 경제 상황이 다른데 환율을 고정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환율은 마치 체온계와 같다. 체온계를 깨뜨린다고 해서 열이 내리지 않는 것처럼, 환율을 고정시킨다고 해서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숨기고 더 큰 위기를 초래할 뿐이다.”
실제로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달러와 금의 태환을 중단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되었고, 세계 경제는 변동환율제로 이행했다.
프리드먼의 예측력은 그의 이론에 대한 신뢰를 높였고, 결과적으로 경제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초,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폴 볼커는 프리드먼의 이론을 바탕으로 강력한 통화 긴축 정책을 실시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1970년대부터 지속된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했다.
예를 들어, 1980년 13.5%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율이 1983년에는 3.2%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