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경제학계는 마치 불꽃 튀는 권투 시합장과 같았다.
한쪽 코너에는 대공황을 극복한 영웅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추종자들이, 다른 쪽에는 새로운 도전자 밀턴 프리드먼과 그의 지지자들이 자리했다.
이들의 대결은 단순한 학문적 논쟁을 넘어 실제 경제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대립이었다.
그들은 경제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두고 치열하게 맞섰다.
정부는 경제에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가? 인플레이션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실업을 줄이기 위해 어떤 정책을 써야 하는가?
케인스의 이론은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주장은 간단했다.
경제가 침체기에 빠지면 정부가 나서서 총수요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황기에 정부가 대규모 도로 건설 사업을 벌인다고 생각해 보자.
이 사업으로 건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게 되고, 그들이 받은 월급으로 식료품을 사고 옷을 사면서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논리다.
마치 시동이 꺼져가는 자동차에 가속 페달을 세게 밟아 엔진을 다시 살리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이 이론은 많은 국가에서 채택되어 경제 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반면 프리드먼은 이러한 케인스의 접근법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오히려 경제를 왜곡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고 보았다.
프리드먼의 시각에서 보면, 케인스의 처방은 마치 감기에 걸린 사람에게 고열을 내리기 위해 얼음물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당장은 열이 내릴지 모르지만, 결국 더 심한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대신 화폐 공급량의 안정적인 관리가 경제 안정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이 두 거인의 대립은 1960년대 필립스 곡선을 둘러싼 논쟁에서 절정에 달했다.
필립스 곡선이란 무엇일까? 이는 뉴질랜드 경제학자 윌리엄 필립스가 발견한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곡선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실업률이 낮아지면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반대로 실업률이 높아지면 인플레이션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마치 어린이 시소와 같아서,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가는 관계로 여겨졌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이 필립스 곡선을 정부 정책의 지침으로 삼았다.
그들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실업률이 너무 높다면 정부가 돈을 더 풀어 경기를 부양하고, 그 결과로 약간의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는 식이었다.
이는 마치 요리사가 소금의 양을 조절하듯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이러한 접근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필립스 곡선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프리드먼의 주장은 이렇다.
처음에는 정부의 경기 부양책으로 실업률이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은 물가 상승을 고려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고, 기업들은 가격을 올린다.
결국 실질적인 효과는 사라지고 인플레이션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당신이 운영하는 빵집이 있다고 하자.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어 사람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처음에는 빵이 잘 팔려 직원들을 더 고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밀가루 값도 오르고, 직원들도 월급 인상을 요구한다.
결국 당신은 빵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경제 전반에서 일어나면 결국 물가만 오르고 실제로 더 많은 빵이 팔리거나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얻는 효과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연실업률’이론을 제시했다.
이는 경제가 장기적으로 도달하는 균형 실업률을 의미한다.
프리드먼에 따르면,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자연실업률 아래로 실업률을 낮출 수 없다.
마치 공을 물 속에 눌러 놓으려고 해도 결국 다시 떠오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경제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정부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의 주장대로라면,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어봤자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만 높아질 뿐 실업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아이들이 좋아하는 풍선 놀이와 비슷하다.
풍선의 한 부분을 누르면 다른 부분이 불거져 나오는 것처럼,경제의 한 부분을 억지로 조절하려 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의 이론은 1970년대에 현실로 드러났다.
당시 많은 국가들이 케인스의 처방에 따라 경기 부양책을 펼쳤지만, 결과는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높아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
이는 필립스 곡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마치 배가 고프면서도 동시에 배가 부른 것 같은 모순된 상황이 경제에서 벌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7%를 넘나들면서도 동시에 인플레이션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이는 기존의 경제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케인스의 이론대로라면 실업률이 높으면 인플레이션은 낮아져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마치 의사가 처방한 약이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만 일으키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실은 프리드먼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의 이론은 왜 케인스의 처방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프리드먼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주장했다.
그의 시각에서 보면,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마치 아픈 사람에게 진통제만 계속 주는 것과 같았다.
일시적으로는 통증이 사라질지 모르지만, 결국 병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고 더 큰 부작용만 남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