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상황에서 연준은 또 다른 혁신적인 정책을 도입했다.
바로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다.
이는 중앙은행이 미래의 통화정책 방향을 미리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연준은 2012년 12월 “실업률이 6.5% 이하로 떨어지고 인플레이션 전망이 2.5%를 넘지 않는 한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주어 불확실성을 줄이고 경제 주체들의 행동을 유도하려는 시도였다.
이런 연준의 정책들은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이론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한편으로는 프리드먼의 아이디어를 충실히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통화량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경제 주체들의 기대를 관리하는 것은 통화주의의 핵심 요소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프리드먼의 생각을 뛰어넘은 측면도 있다.
프리드먼은 중앙은행이 단순히 일정한 속도로 통화량을 늘
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지만, 2008년 위기 이후의 정책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적극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들의 효과는 어땠을까? 미국 경제는 2009년 중반부터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실업률은 2009년 10월 10%로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하락해 2019년에는 3.5%까지 떨어졌다.
GDP 성장률도 2010년부터 플러스로 전환되어 평균 2% 내외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했다.
이는 대공황 때보다 훨씬 빠른 회복 속도였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연준의 대규모 개입이 시장의 자연스러운 조정 과정을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새로운 자산 버블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실제로 미국의 주식 시장은 2009년 이후 거의 일방적인 상승세를 보였고, 부동산 가격도 꾸준히 올랐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정책들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제로금리와 대규모 자산 매입은 비상시의 정책인데, 이것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경제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저금리 환경에서는 좀비기업(수익성이 낮아 이자도 제대로 갚기 어려운 기업)들이 살아남기 쉬워져 경제의 전반적인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와 그 이후의 정책 대응은 통화주의 이론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프리드먼이 강조했던 ‘통화량’의 개념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현대 경제의 복잡성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화폐 유통 속도의 변화, 기대 인플레이션의 역할, 글로벌 금융시장의 상호연관성 등 새로운 요소들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통화주의 이론의 유효성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그 한계도 드러낸 사건이었다.
연준의 대응은 프리드먼의 교훈을 충실히 따랐지만, 동시에 그의 이론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정책들도 도입했다.
이는 경제학 이론과 정책이 현실의 도전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앞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경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되새기면서도, 현재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